다산 정약용 최초유배지 사의제
정약용(丁若鏞, 1762년 음력 6월 16일, 경기도 광주[1] ~ 1836년 음력 2월 22일)은 조선 정조 때의 문신이며, 실학자·저술가·시인·철학자·과학자·공학자이다. 본관은 나주, 자는 미용(美庸), 호는 사암(俟菴)·탁옹(籜翁)·태수(苔叟)·자하도인(紫霞道人)·철마산인(鐵馬山人)·다산(茶山), 당호는 여유(與猶)[2]이며, 천주교 교명은 요안,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중농주의 실학자로 전제 개혁을 주장하며 조선 실학을 집대성하였고, 수원 화성 건축 당시 기중가설(起重架說)에 따른 활차녹로(滑車轆轤 : 도르래)를 만들고 그를 이용하여 거중기를 고안하여 건축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또한, 유교 경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 당대 조선을 지배한 주자학적 세계관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을 시도하였다. 문집으로 유배 생활 중 대부분이 저술된 《여유당전서》[3]가 있다.
다산 정약용선생이 최초로 유배되었던 곳, 강진군청옆 [사의제]
정보화선도자 점검회의차 강진에 찾았다. 구례에서 1시간 40여분이 걸렸다. 10시부터 행사가 있는 줄 알았는데, 10시 20분이란다..ㅎㅎ
시간이 남아서 둘러보았다.
[독소]
양식많은 집엔 자식이 귀하고
아들많은 집엔 굶주림이 있다네.
높은 벼슬아치는 꼭 멍청하고
재주있는 인재는 재주 펼 길 없으니
..........(중략)
세상일 이란게 모두 이런거야
나 홀로 웃는 까닭 아는 이 없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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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어쩌면
세상은 비슷한것 같아서 나도 홀로 웃음이 나온다..ㅎㅎ
전남 강진군 강진읍 동문리 4의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