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 간 까닭은?

category 굿모닝, 지리산 2020. 11. 13. 00:34,

서초동의 농원에서 일을 그만두고 노량진으로 다시 왔다. 학원 교재도 사고 공부라는 것을 하려고 폼을 잡았다. 일주일이 지났을까 친구들과 당구장에 간 사이 내 가방은 사라졌다. 그럼 그렇지 공부하지 말라는 하늘의 계시인가 보다라며. 노량진 정진학원 근처 포장마차에 앉아 친구랑 소주를 마셨다. 그 시절엔 전어가 인기가 없었다. 며느리들도 집을 나가지 않은 탓에 싸구려 안주로 가시 많은 전어를 텝텝 가시를 발라내며 지갑이 늘 허전한 재수생은 씁쓸하게 소주를 마셨다.

그리고 대학생, 최루탄과 지랄탄에 맞서 보도블록을 쪼개 투구 연습을 하면서 세상이 혁명이라도 될 것이라며 캠퍼스 생활은 그렇게 지식인을 위한 변명만 외치다가 끝이 났다. 군대를 졸업하고, 복학하고 다시 대학을 졸업했어도 가슴은 한편은 여전히 허전했다.
1997년 IMF로 크게 한 방 얻어맞고 정신 차리려고 달렸다. 히말라야 14좌라도 오를 기세로 산에 오르고 올랐다. 그 역시 부족해 마라톤으로 스트레스성 위염을 다스려야만 했다. 


2004년, 초등학교 1학년 아들, 2학년 딸과 귀농하기 전 폭풍주의보를 뚫고 2박 3일 종주 


인간의 DNA는 수렵과 채취로 길들여져 있다.

진화가 덜된 털 없는 원숭이 아파트가 싫었다. 그래서 아직 것 살아본 적이 없다. 군에서는 야전 1종 창고로 그래도 나았지만, 콘크리트 들판에서의 생활은 거북스러웠다. 수렵과 채취의 DNA가 강해서 호시탐탐 도시 탈출을 꿈꾸어 왔던 것이다. 빠삐용보다도 더 치열하게 중학교 2학년 이후로 탈출을 꿈꾸었다.
도시의 수많은 빠삐용들이 도시 탈출을 노리지만, 마누라 등살과 아이들의 반대로 감히 탈출을 포기하고 만다. DNA 수치 퇴화가 많은 사람들은 라이언킹처럼 다시 용기를 내 야생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나는 산을 좋아한다. 중산리 출발해서 천왕봉 찍고 성삼재까지 9시간 30분 만에 종주를 하던 빠삐용의 시절도 10km를 36분대에 목에 피 냄새를 맡으면서 주파하기도 한 이력이 있을 정도로 탈출을 위한 준비를 하기도 했다.

퇴화가 덜된 탓에 다시 산으로 올 수 있었다. 지리산 입산 13년 차 도시의 콘크리트 두통은 사라졌지만, 인터넷으로 도시와 산골의 거리감은 공간을 초월해 버린 탓에 철인 3종을 하겠다던 기억도 천고마비의 틈을 타 아랫배는 이미 균형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퇴화되는 야생, 다시 회복해낼 것이다. 
  


버킷리스트가 소름처럼 돋아나기 시작했다. 바다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고, 도시에서 청년기를 보냈다. 그리고 지리산이라는 공간에만 머물기에는 너무 답답하다. 지리산은 그저 베이스캠프일 뿐이다. 제주도 사려니숲에서도 울진의 왕피천에서도 보길도의 섬에서도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 시간을 보내고 싶다.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은 55세에 은퇴를 하였고, 빌 게이츠는 58세에 은퇴를 하였다. 나는 욕심을 내서 60살에 은퇴를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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