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안개나루터

category 굿모닝, 지리산 2020. 11. 15. 18:06,

안개는 낮에 더워진 공기가 새벽에 기온이 낮아지면서 차가워져 수증기가 응결하여 안개가 생긴다. 11월이 되면 특히 안개가 잦다. 특히 지리산은 섬진강을 에둘러 있고 더 멀리는 남해바다의 수증기가 많아서 능선에서 운해를 만나기가 쉽다. 무진기행이라는 소설을 쓴 소설가 김승옥의 고향은 순천이다. 순천도 바닷가다 보니 안개가 많다. 구례하고는 붙어있어 무진기행에 세무서장이 나오는데, 구례의 관할 세무서도 순천세무서라서 반갑게 읽었던 기억이다. 소설가는 여순항쟁으로 아버지를 잃었고, 5.18과 민주화를 겪어내면서 힘들었던 내면의 갈등을 안개 나루터 무진을 통해서 어디론가 자유롭게 떠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늘 그렇듯 안개가 끼는 날은 낮 날씨가 좋다. 기온차가 거칠게 심한 지리산은 서리를 여러 번 맞힌 감으로 곶감을 깎기 시작한다. 서리를 맞은 감은 하얗게 과분이 생긴다. 더 추워지면 번식에 지장을 주기 때문에 서둘러 모든 에너지를 씨앗에 투자하고 종족번식의 준비가 끝났다는 표시를 비로소 한다. 다음은 새를 비롯한 동물들의 차례다. 자외선까지 볼 수 있는 새들에게 하얀 과분을 보여줌으로써  번식을 위한 이동을 기다리는 자연의 이치를 보면 감탄할 따름이다.


거미줄에 잡힌 안개


할아버지도 여순항쟁에 참여를 하셨다가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다. 풍비박산이 난 아버지의 형제들은 전쟁통에 흩어져 이산가족이 되었다. 1983년 KBS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를 통해서 눈이 빠지도록 고대했지만 가족은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몇 년 후 고모가 생겼다. 갑자기 부산에서 사셨다는 경상도 사투리를 쓰시는 고모가 꿈에서 고향을 알려주어 법성면사무소에 연락을 하시고 수소문 끝에 집으로 찾아오셨다. 그리고 고모랑 수소문해서 아버지 동생 작은아버지를 찾으러 다녔다. 광주에서 기아자동차에 다니시는 분을 찾았지만, 다섯 살에  입양을 가서 가족에 대한 그리움도 그리 없고 성을 양 씨로 쓰고 계셨다. 그분은 가족들한테 혼란스러워지는 게 싫다고 하셨다. 그렇게 살아있다는 것으로 만족하고 지내고 있다.



낮에는 토벌군으로 밤에는 반군으로 투쟁해야했던 1948년 10월 이후 안개가 자주 끼는 늦가을 소설가 김승옥의 아버지도 나의 할아버지도 돌아올 수 없었다. 안개가 그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우리는 새로운 표정으로 사람들을 맞이한다. 
섬진강 안개 나루터에는 기다려주는 이도 이제 없고 뗏목 한 척도 없이 고요히 흐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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